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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소개

고인돌문명

의식주, 도구복원, 공동체사회, 고인돌 축조에대해 안내합니다.

농경구

돌칼(石刀)은 곡식의 이삭을 따는 도구로 평면이 타형 또는 반원이며 중앙부에 1-2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끈을 꿰어 사용한다. 반달돌칼은 수평방향으로 힘을 작용시켜 무엇인가를 자르는 것이 아니라 날을 이용하여 식물의 줄기를 꺾는 식으로 사용한다.

삼각형돌칼은 등(背) 가까운 곳에 2개 또는 1개의 구멍이 있고, 날이 둥근모양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직선날을 지닌다. 반달돌칼과는 달리 중심부의 편중을 막을 수 있고 돌려가면서 사용할 수 있어 매우 유용하다.

돌낫(石鎌)은 곡식이나 잡초를 베든지, 이삭을 자르는데 사용되었던 수확용 도구이다. 돌낫은 새 부리모양 또는 초승달 모양으로 둥글게 휘었으며 안쪽이 날 부위로 집중 마연되어 있다.

벌채구와 가공구

청동기시대에 농업생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각종 목제도구가 발달되었다. 이 목제도구를 만들 때 각종의 도끼, 끌 등의 석기가 사용되었다.

돌도끼(石斧)는 신석기시대부터 출현하여 청동기시대에 이르면 크기도 대형화되면서 더욱 많이 제작된다. 양쪽에서 날이 갈아진 합인석부는 나무를 쳐서 쓰러뜨리는 벌채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본격적인 목공구의 출현을 알리는 자료이다.

돌대패는 방형에 납작한 모양을 가지면서 외날을 가지며 지금의 대패와 비슷한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나무를 깎거나 다듬는데 사용했던 도구로 생각되며 가공공정 중에서 마무리단계에 사용하였다.

돌끌은 목재가공의 최종 마무리 단계에 사용된 소형 석기이다. 주로 양질의 석재를 많이 사용해 날카로운 인부를 제작한다. 중대형 돌도끼가 할 수 없는 필요한 구멍을 낼때도 사용된 것으로 추정한다.

수렵구

돌화살촉은 수렵과 무기로 사용된 것으로 대부분 청동기시대에 제작 사용되고 있다. 석재는 혈암(頁岩), 이암(泥岩), 편암(片岩), 판암(坂岩), 혼펠스 등 다양한 재료가 이용되었다. 길이가 5㎝ 내외의 것이 가장 많으나 긴 것은 10㎝를 넘는 것도 있다.

돌창은 수렵도구 중 가장 살상력이 높은 도구로 구석기시대 이래로 짐승사냥에 효과적으로 이용된 사냥도구인 동시에 공격과 방어기능이 있는 위력적인 무기의 일종이다.

무기류

간돌검(磨製石劍)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석기로 실생활용구로 사용되었으나 부장용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주로 고인돌이나 석관묘에서 많이 출토된다.

석검은 검신과 자루로 구성되며 자루 대신 슴베를 만들기도 한다. 사용된 석재는 주로 석질이 무른 응회암종류로 길이는 대부분 30cm 내외이나 청도 진라리의 경우는 67cm에 이른다.

옥제품

옥(玉)으로 만든 장신구로, 옛사람들은 옥을 천지(天地)의 정수이며 음양에 있어 지극히 순결한 것이라 생각하고 귀하게 여겼다. 옥을 몸에 지니거나 옷에 달고 다니면 약효가 나타나고, 잡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옥의 원석을 갈고 다듬어 작은 구멍을 뚫으면 구슬이 되고, 이 구슬을 수 없이 꿰어 달아 길이가 목에 두르는데 알맞으면 목걸이(頸飾)가 되고, 가슴에까지 걸치면 가슴걸이(頸胸飾), 손가락에 끼우면 반지(指環), 팔목에 끼우면 팔찌(釧)가 된다. 그리고 팔에 끼우면 완천(腕釧)이 된다. 옥은 형태에 따라 구슬(小玉), 대롱옥(管玉), 둥근옥(丸玉), 굽은옥(曲玉), 겹굽은옥(母子曲玉) 등으로 분류되며, 옥의 사용되는 물질에는 석제(石製), 유리(琉璃), 마노(瑪瑙), 수정(水晶), 호박(琥珀), 비취(翡翠), 천하석제옥(天河石製玉), 황옥 등이 있다.

방적구

가락바퀴는 실을 뽑을 때 사용하는 방적구의 일종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선사시대 방적구는 원반모양, 팽이모양, 주판알모양, 공모양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원반모양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가락바퀴의 가운데에는 회전력을 이용하여 막대를 꽂을 수 있는 둥근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에 가락바퀴의 축이 될 막대를 넣고 축을 회전시키면서 서서히 실을 뽑거나 구멍을 뚫기도 했다.

재질로 보면 흙으로 구운 것. 돌로 만든 것, 질그릇 조각을 갈아서 만든 것 등이 있다.

조리구

갈돌과 갈판은 나무열매나 곡물의 껍질을 벗기고 가루를 만드는데 사용한 원시적인 제분구 이다. 밑에 놓인 갈판은 가운데가 장기간 사용으로 인해 오목하게 들어가 연석으로 불리우기도한다.

분쇄의 대상물로서는 적색안료와 패류, 토기를 만드는 점토에 혼합시키는 돌 등으로 생각되지만, 주로 도토리와 나무 열매 등의 견과류와 참마 등의 근경류(根莖類)의 제분가공이 목적이다.

맞춤형 토기

고인돌시대에 만들어 썼던 토기를 문양이 없어 민무늬토기라 한다. 이 토기는 굵은 모래나 곱돌가루를 섞은 진흙으로 빚어 한데가마(露天窯)에서 구운 납작토기로 대개 적갈색이나 황갈색을 띠게 된다.

산이나 들에서 주워 모은 나무열매나 농사를 지어 생산한 곡식을 저장하기 위한 저장용 항아리, 운반하기 위한 운반용 항아리, 음식물을 요리하기 위한 그릇, 조리된 음식을 먹기 위한 식기용 그릇 그리고 무덤에 부장하기 위한 토기 등이 특별히 제작되기도 하였다.

저장 (貯藏)

밭과 논에서 추수하여 거둬들인 곡식은 일상용으로 먹기위해 저장하여 두고 이듬해 농사를 위해 특별히 종자도 보관해야 한다.

생산된 곡물을 저장할 필요에 따라 저장용 토기의 형태가 변형, 발전하였고, 동물의 침입을 막거나 썩지 않도록 잘 보관할 수 있는 창고와 같은 별도의 저장시설도 고안되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는 천연의 저장시설인 지하식 구덩이도 만들게 되었다.

조리 (調理)

음식을 조리하기 위한 그릇은 높이 20cm 내외의 작은 항아리가 사용되었다.

그릇의 외면의 흔적을 관찰하면 주위에 불어 탄 흔적들이 관찰되는데 노지에서의 조리방법은 안정적으로 놓은 후 그 주위에 불을 피워 끓이는 방법으로 추정하고 있다.

식사 (食事)

밭에서 잡곡생산, 논에서 쌀 재배, 동물사냥, 견과류 채집 등으로 미루어 보면 사람들의 생활은 곡류, 어패류, 푸성귀, 육류, 도토리 등 현재의 일반적인 먹거리와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안정된 식량공급으로 요리한 음식을 먹기 위한 식사용의 소형 그릇을 제작하고 사용하였다. 그릇의 크기는 5-11cm 정도이고, 대접, 접시, 보시기 등 용도에 따른 형태의 분화를 볼 수 있다.

신분의 상징, 청동기

돌로 만든 도구만을 사용하던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처음으로 구리와 주석이라고 하는 금속을 알게 되고 이것을 이용해 비파형동검이나 청동창, 청동화살촉, 거울 등의 청동기를 처음으로 만들어 냈다.

이러한 청동기는 채광-정련-용범제작-주조라는 일련의 공정을 거쳐 하나의 제품이 완성되며 재료의 희귀성으로 인해 일반주민들의 실용품이라기보다는 유력자만이 지닐 수 있었던 특수품 또는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물로서 사용되었다.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분포하는 한국의 청동기는 무기가 대부분이고, 공기, 의기, 꾸미개, 차마구 등의 기종이 있는데, 무늬로서는 기하학무늬가 주로 장식되었다. 무기로는 劍, 투겁창, 꺽창, 화살촉 등이 있다.